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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칼 구스타프 융

이니그마7 2020. 3. 21. 01:42

  사랑은 아름다운 죄라면서요? 아름답기 때문에 목숨을 걸게 만들고, 목숨을 걸게 만들기 때문에 죄인인 거겠지요. 사랑에 목숨을 걸면 사랑이 신비와 기적을 보여주나 봅니다. 아니, 반대로 그 신비와 기적을 봤기 때문에 위태로운 사랑에 목숨을 걸게 되는 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융은 사랑을 ‘어쩔 수 없는 운명의 힘’이라 했습니다. ‘사랑에 대하여: 사랑에 대한 칼 융의 아포리즘’(솔출판사)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사랑은 무조건적인 태도를 요구하며, 완전한 헌신을 바란다. 신에게 온전히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신의 은총을 향유하게 되는 신앙인처럼, 사랑은 조건 없이 감정을 헌신하는 자에게만 최고의 신비와 기적을 보여준다.”


  융은 괴테의 증손자였습니다. 피는 못 속이나 보지요? 융은 위고의 사랑 시를 좋아했는데, 융이 선택한 저 위고의 시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본질을 꿰고 있습니다. “오, 사랑이여, 너만이 신을 하늘에서 끌어내릴 수 있었다. 너의 속박은 얼마나 강한가. 신을 묶어놓을 수 있을 만큼 강했으니. 너는 신을 인도해왔고, 영원한 자를 죽을 수밖에 없는 자로 만들었다.”


  기독교에서 예수는 인간이 된 하나님입니다. 이상하지요? 왜 하나님이 인간이 됐지요? 영원하고 완전하고 무한한 하나님이 무엇이 모자라 보잘 것 없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되었을까요? 그게 사랑의 힘이랍니다. 사랑은 위고의 표현대로 영원한 자를 죽을 수밖에 없는 자로 만드는 힘이고, 높고 높은 하늘보좌를 툭툭 털고 낮고 추한 마구간으로 하강하게 만드는 힘이라는 거지요. 그 사랑만 있다면 고단하고 힘겨운 마구간 인생이라 할지라도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거겠지요. 반대로 사랑이 없다면 하늘 보좌도 소용없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신을 비루하고 지저분한 마구간으로까지 불러들인 저 신적인 사랑의 빛을 보셨습니까? 그것이 신을 본 거랍니다. “사랑은 신 자신이다. 신은 사랑이다.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자는 신안에 머물러 있으며 신은 그 사람 속에 머물러 있다.”


  심리학자 융이 사랑에 대해 그렇게 많은 말을 한 것은 ‘나’를 알고 사랑을 알고 그리하여 제대로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의사소통의 필요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융은 특히 성욕에 걸려서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남자들을 많이 봤나 봅니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에로스에 대해서는 장님이다. 그래서 에로스를 성욕과 혼동하는 용서받을 수 없는 오해를 한다.”
 
 
  그 용서받을 수 없는 오해의 결과는 삶의 훼손입니다. 깊고 진실한 사랑이 깊고 진실한 성애로 이끈다는 융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성애란 동물적 본성에 속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의 최고 형태에 속하기도 한다. 이러한 성애는 정신과 본능적 충동이 일치할 때에만 꽃을 피운다. 둘 중 하나라도 모자라면 손상이 생기고, 최소한의 균형이 깨어져 쉽게 병적인 것으로 빠져든다.” 정신과 본능적 충동이 일치하는 사랑을 하고 있는 한, 생은 신비고, 나날이 기적입니다.
 
 
이주향 수원대 철학 교수
- 칼 구스타프 융 '사랑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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