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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


1.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결정적인 눈이 내리는 듯 하다. 언제부턴가 눈이 올 때마다 머릿속을 맴돌던 저 첫 구절로 시작하는 이 소설을 이제서야, 정말 오랜만에 센트럴에 들러 서점에서 직접 사서 읽었다. 서둘러 읽은 이유는 아마 지난 몇일간 너무나도 독하게 내린 눈의 풍경과 엉망으로 마무리되어가는 내 한 학기 때문인듯 하다.


2.설국은 아름다운 군더더기로 가득하다. 지난 몇 년간 소설을 잘 읽지 않았던 데에는 아마 플롯이나 복선을 이해하기 위해 머릿속에 무언가를 담아두어야 하는 그 번거로움에 대한 거부감 때문도 있었다. 나는 어떤 감정적인 순간, 가령 누군가와의 의미있는 순간이나 마음을 꿰뚫는 노래 가사 따위들,을 '암기' 하는데 상당히 어려움을 겪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국은 여러 작품 해설에서도 말하듯 그 섬세한 부분부분에 순간순간 몰입하는 것 만으로도 괜찮아서,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되짚고 되짚어가며 읽었다.


3.일본 문학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은 아마도 내 첫 일본 소설이었을 상실의 시대를 다 읽고난 뒤 찾아왔던, 그리고 여타 일본 영화들을 보고 난 뒤 항상 남던 알 수 없는 찝찝함 때문이었던 듯 하다. 하지만 설국은 책장을 덮고 난 뒤의 그 묘한 감정의 청명감에, 당장이라도 나가 벤치의 눈을 쓸어버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 온 뒤 으레 찾아오는 그 맑고 밝은 밤 하늘을 열심히 봐야만 할 것 같은, 그런 여운을 준다. 번역자의 고민대로 원문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을 이 작은 번역판이 주는, 지금까지 읽어왔던 여러 소설들과는 다른 이 느낌에 먹먹하다.


4.고독에 익숙해졌으나 왕성했고 결국 노벨 문학상까지 탄, 그리고(역시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는 작품 해설에서 어렵게 씨부렁거리고 있지만 썩 와닿지 않는다. 소설 안에서 더 벗어나서는 안될 것만 같은 풍경들을 함부로 이야기하기에는 문장 한 구절 한 구절이 그 안에서 '완성' 되어 있다. 그래서 무어라 말하기도 평가하기도 어렵고, 또 책장을 덮으면 그 여운이 확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라 신선하다. 이런 작품을 또 언제 접하게 될까.


5.그래서 책장을 넘기는 내내 휘몰아쳤던 많은 감정들이, 이런 글을 쓰며 마구 내뱉고 울어버려야 하는 그 감정들이, 책을 덮는 순간 그 안에 숨어버렸다. 내 머릿속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201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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